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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간판 탈출증의 걷기

다산의 유배지이자 학당이었던 '다산초당'

by florian504 2024. 1. 8.

안녕하세요.

따듯한 남쪽을 여행중인 플로리안 입니다. 

 

강진의 도암면에 다산박물관과 연계하여 방문하면

좋은 '다산초당'으로 사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다산박물관에서 멀지않은 뒷산에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정약용선생의 일대기와 저서 등을

환기시켜보고 뒷산인 다산초당에 오르시면

이해도 쉽고 

의미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에요.  

 

 

 

다산초당 입구에 보면 '다산명가'라는

찻집,민박집,식당을 하는 가게가 있는데

그 앞에 무료주차장이 있습니다. 

크지않는 주차장이지만 방문객이 

많지는 않아서 그 곳에 주차하시면 

편하실껍니다. 

 

다산명가라는 가게의 모습입니다. 

이쪽에 오르기까진 '여기가 맞나?'라고 

할정도로 작은 동네 마을을 통과하는 느낌입니다만

주차장에 금방 도착합니다. 

 

조선왕조의 천주교 대대적인 박해인

신유박해가 있었던 1801년,

셋째형 정약종(아우구스티노)은 사형,

둘째형 정약전(안드레아)는 신지도로 유배되었다가

흑산도로 이배되었습니다. 

 

정약용은 천주교에 대한 배교와 원복의 사실이

역사적으로 의견이 나뉘긴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같은해 2월에 옥살이,

3월에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10월에 황사영 사건으로 11월에

이곳 강진으로 이배되었습니다. 

 

 

책과 다기등을 팔고 있는 가게가 바로 입구에 있네요. 

 

다산초당에 오르면 화장실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이곳 입구에서 걸어서

성인남성 기준 10분이면 오르는 난이도입니다. 

 

1801년 겨울 강진으로 유배되어

1818년 해배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귀향했죠. 

 

큰 어려움 없이 오를수 있는 등산로입니다. 

혹시 운동을 더 하고 싶으시면 

백련사까지 다녀오시면 되겠습니다. 

 

 

몇년전에 왔을 때는

글을 쓰지 않았던 시절이라

별 의미없이 둘러보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좀 다르네요. 

사실 다산박물관에 들르시면 많은 것을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조금 오르니 다산초당이 보입니다. 

형 정약전과는 1801년 나주의 한 주막집에서

헤어지고 죽을때까지 재회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서암은 제자들이 기거하였던 곳이며,

다성각이라고도 합니다.

흔적뿐이었던 것을 1975년

강진군에서 다시 세웠다고 하네요. 

 

 

 

초당은 다산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이며,

1957년 허물어진 초가를 치우고

기와로 복원하였습니다. 

 

이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우리가 선입견을 가진것처럼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물론 옥살이며, 유배, 이배

그 과정에서의 고통까지는

어떻게 생각을 해도 이해할수는 없겠지만,

가끔씩

머~~~얼~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 

 

초당은 굉장히 심플한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산의 초상이 모셔져 있네요. 

집필의 왕으로 알고 있는데,

책이라도 몇권 사본으로 전시했으면 좋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곳에 있는 거겠죠?

 

초당옆에 있는 '연지석가산'은 연못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입니다. 

잉어까지 키웠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잉어는 

없었습니다. 

 

운동이 부족하신 분들은 1.12km떨어진 백련사에 

다녀오시는걸 추천드립니다.

백련사는 절 아래까지 차로 갈 수 있는 곳이긴 합니다. 

 

초당의 오른쪽에 있는 동암을 지나 천일각,

그리고 백련사로 갈 수 있는 길이 나옵니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을 줄인 

천일각의 모습입니다.

다산때는 없었다고 하며 유배당시

멀리 강진만을 바라보며

정약전을 그리워했을 것이라는

의미로 강진군에서 1975년에 지었다고 하네요. 

 

 

짧은 관람시간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바로 아래 있는 다산박물관에 다시 가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박물관은 입장료 있습니다) 

관람을 마칩니다.